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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적응형 패션

한국에서 적응형 패션은 왜 낯설까? 시장의 현실과 과제

한국에서 적응형 패션은 왜 낯설까? 시장의 현실과 과제

 

1. 국내 적응형 패션 시장의 현실: 인식 부족과 산업 구조의 한계

한국에서 ‘적응형 패션’이라는 용어는 아직 일반 대중에게 낯설고, 관련 제품도 쉽게 접하기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단순히 수요가 적어서가 아니라, 패션 산업 자체가 장애인 소비자를 '주요 타깃'으로 고려해 본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브랜드는 "장애인 대상 시장은 작고 비효율적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으며, 제품 기획 단계부터 배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게다가 적응형 패션을 기획하고 생산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제조 기반도 매우 제한적입니다. 기존 브랜드는 대량 생산 체계에 익숙한 반면, 적응형 의류는 개별 조건에 맞춘 설계와 정교한 공정이 요구되기에 생산비용과 리스크가 높아집니다. 그 결과, 적응형 패션은 ‘의료기기’처럼 소규모 업체나 특수복 전문 제작소에서만 다뤄지고, 그마저도 의료적 목적에 국한되어 기능 위주의 형태로 제한되고 있습니다.

 

2. 적응형 패션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문제: 패션은 장애인에게 사치일까?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패션’은 오랫동안 불필요하거나 사치스러운 것으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입기 편하면 그만이지 굳이 멋까지 낼 필요가 있을까?’라는 인식은 단지 일반인의 시선일 뿐 아니라, 장애인 스스로에게도 내면화되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곧 적응형 패션에 대한 수요가 시장에서 가시화되지 못하게 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집니다.

이와 더불어, 장애인의 라이프스타일을 고려한 콘텐츠나 미디어 노출도 매우 부족합니다. 국내 패션쇼, 광고, 드라마, 유튜브 콘텐츠에서 장애인을 모델로 기용하는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이며, 장애인의 ‘멋’에 대한 긍정적 이미지를 공유할 기회 자체가 적습니다. 이처럼 사회 전반의 시선이 아직도 장애인의 '기본 욕구'보다 '기능적 제약'에만 집중되어 있는 상황은 적응형 패션의 성장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 중 하나입니다.

 

3. 제도적·유통적 장벽: 가격, 접근성, 정책의 부재

적응형 패션이 한국에서 확산되지 못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유통망의 한계와 가격 접근성입니다. 대부분의 적응형 의류는 인터넷을 통해 수작업으로 주문 제작되거나, 소규모 의료보조기기 업체를 통해 제한적으로 유통됩니다. 백화점이나 로드숍, 쇼핑몰에서 장애인을 위한 옷을 찾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또한 가격도 문제입니다. 특수한 재단과 봉제 기술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셔츠 한 벌도 일반 제품보다 1.5배에서 2배 이상 비싼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고비용을 보조하거나, 제작에 대한 세제 혜택이나 연구지원이 거의 전무한 현실에서 소상공인이나 스타트업이 이 시장에 뛰어들기는 쉽지 않습니다. 장애인의 기본적인 생활 편의에 기여하는 의류가 의료급여 대상에도 포함되지 않는 현실은 제도적으로 매우 아쉬운 부분입니다.

 

4. 한국형 적응형 패션의 가능성: 사회적 연대와 디자인 혁신의 출발점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형 적응형 패션의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최근 몇 년 사이 발달장애 아동을 위한 감각친화 교복, 휠체어 사용자용 특수 등산복, 고령자를 위한 자석 셔츠 등 소규모 프로젝트들이 나타나고 있으며, 이들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또한 장애인 부모 커뮤니티, 사회적 기업, 디자인 전공 대학생 등 다양한 주체가 함께 협업하여 현실에 기반한 디자인을 공동 개발하는 사례도 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복지기관, 민간기업이 협업해 적응형 의류를 공공 영역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관련 산업을 육성하는 정책적 기반이 마련된다면 한국에서도 충분히 포용적 패션 문화를 정착시킬 수 있습니다. 패션은 단지 멋이 아니라, 존엄성과 자율성의 표현이며, 누구에게나 동일하게 필요한 삶의 일부입니다. 한국 사회도 이제 ‘모두를 위한 디자인’의 눈높이에서 적응형 패션을 바라볼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